내가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서 점점 기괴하게 생각하는 것은
영화 자체는 금방 이해가 되는데 본 다음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거의 플롯의 구조가
붙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이 할리우드 영화를 쉽게 이해하게 만드는가?
플롯없이 무엇을 보고 있는가?
<조디악>을 본 다음 <살인의 추억>처럼 플롯을 설명하는 것이 가능한가?
<본 얼티메이텀>을 본 다음 이 영화가
아무 인과관계 없이 고작해야 세 개의 시퀀스만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 텅 빈 플롯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우리를 공허하게 만들지 않는가?
<마이클 클레이튼>을 본 다음 정성일 아저씨의 이 구절이 생각났다.
거대 기업의 부패를 파헤치려다 죽은 동료와 그로 인해 비밀을 알게 된 주인공 마이클 클레이튼
그를 죽이고 모든 것을 은폐하려는 간부의 계획은 프로페셔널했던 청부업자에게
예상하기 어려운 실수로 실패하고
살아 돌아온 그는 모든 것을 까발리고 그녀의 끝을 고한다.
이 흔하디 흔한 그리고 단순한 내용에 감탄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껏 철저하던 청부업자가 시간이 촉박해 폭발물을 제대로 설치못했다는 건 이해하더라도
마이클 클레이튼이 왜 갑자기 쫓기는 것을 알아 챈 듯 길을 벗어나고
왜 말을 보러 언덕길을 올라 위기를 모면하는지
인과관계가 전혀 성립되지 않는 이 절정 장면을 지적하지 않고 넘어가게 하는 건 무엇일까?
모든 사실을 밝히고 자신을 죽이려고 한 그녀를 궁지로 모는 상황은
단지 그녀와 마이클 클레이튼 둘이 텅빈 복도에서 주고 받는 대화, 클로즈업 된 얼굴뿐인데
어떻게 그렇게 극도로 긴장하게 만들며
마지막 그의 “너는 끝났다”는 말 한마디가 주는 쾌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얕은 생각으로 떠오른 마이클 클레이튼의 몇 가지 키워드!!
1. 최소한의 정보만으로 영화를 끌고가는 군더더기 없는 전개
먼저 절정의 사건을 인트로 형식으로 보여주며 최소한의 정보와 핵심을 알려준 후
영화의 본론이 시작된다. 미친 사람의 중얼거림처럼 시작하는 영화 첫 나레이션은
사건의 핵심인물을 소개하는 동시에 마이클 클레이튼에게 닥친 실존적 문제를 축약하고,
이후 경매붙은 식당과 등교하는 아들을 데려다주는 역할만 허락된 아빠,
신경쇠약증에 걸린 부호의 뺑소니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은
그가 실패한 가장이며 변호사라는 그의 직장에 그가 염세적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빚더미에 올라 벼랑 끝에 서 있음을 설명한다.
그렇게 정보와 핵심을 던져주고 시작하는 영화는 더 이상의 덧붙임없이 사건에만 집중한다.
2. 3번의 포인트에만 감정을 올인시키는 집중력이 주는 긴장감.
법정에서 스트립쇼하는 미쳐버린 변호사를 해결해야하고
그를 미치게 만든 소송은 거대 기업의 은폐와 술수가 가득차있다는 진실을 알게 됐음에도
마이클 클레이튼은 모든 사건에 흥분하지않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덤덤하다.
그러다 딱 세 번 그가 평정을 가장했던 감정을 내비치는데
그동안 너무 건조하게 이어졌던 터라 그 장면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아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빚더미에 앉힌 사촌을 외면하고
그것을 변명하듯 너는 삼촌처럼 실패하지 않을 거다.
강하니까 절대 그렇지 않을거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그의 흥분한 어조와 달리
그것을 지켜보는 아들은 차분히 고개를 끄덕인다.
다 큰 어른이지만 아들에게 확신을 들어야지 안정이 될 정도로
아이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아빠.
갚을 수 없는 빚을 대신 갚아주길 사장에게 얘기하면서
자신이 오랜 시간동안 쓰레기치우는 일 같은
보람도 의미없는 일에 소모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괴감을 드러내는데
그것을 잠자코 듣고 있던 사장은
클레이튼이 그나마 괜찮은 시절이라고 생각하는 검사로써의 생활도 썩 잘 하진 않았다고 응수한다.
자신이 원하는 생활은 인정받지 못하고 자신이 잘 하는 생활은 음지의 뒤치다꺼리일 뿐인,
아무도 하기 싫어하지만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충족은 없고 의무만 있는 마이클 클레이튼이 비루한 직업.
마지막 자신을 죽이라고 사주한 그녀와의 대면에서,
격하게 흥분하며 그녀를 자극하며 자신은 적이 아니라 매수할 대상이라고 말하는 마이클 클레이튼.
당당했던 그녀를 궁지로 몰아서 사건의 전말을 고백하게 하고
그녀에게 정색하며 끝이라고 얘기하며 돌아서는
그는 지금까지 긴장하게 만들었던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후련해 보이지만.
사건이 해결되ㅈ지만 여전히 피곤해보이는 그는 이후의 삶 역시 비루하고 고단하게 이어질 것만 같다
폭로했다고 변화는 건 아무것도 없다, 또 다시 일상이 반복될 뿐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마이클 클레이튼의 무표정한 얼굴.
3.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내야한다는 프로 정신과 너무도 피곤에 찌든 캐릭터
이유불문 시키는 데로 일을 처리할 뿐이라는 냉철한 청부업자와
자신의 일을 할 뿐이라며 빚을 독촉하는 중간보스는
살인을 저지르고 주인공을 곤궁에 처하게 하지만 전혀 악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자신의 직업에 충실할 뿐이다.
감정없이 흥분도 없이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사이
사람이 죽고 빚쟁이는 협박을 당한다.
범죄자들이 프로페녀설해질 수록 범죄는 간결하고 감정은 피폐해진다.
그리고 두 주인공, 마이클 클레이튼과 대기업 범률 자문가인 그녀.
결국 마이클이 선의의 편에 서고 그녀는 은페하느라 악행을 사주하지만
둘다 게임에서 이겼다 졌다라고 얘기하기에 너무 피로해보이고 너무 지쳐보인다.
평정을 가장하는 마이클과 합리적이고 올바른 이미지를 가장하는 그녀.
그러나 그들은 언젠가 폭발한 흥분된 감정을 숨기고 있고 수없이 연설을 되네이며 초조해한다.
평화를 가장할 수 밖에 없는 피곤한 사람들. 이것이 우리 모두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일까?
하지만 피로에 찌든 얼굴로 택시를 탄 마이클 클레이튼의 마지막 얼굴을 보면서
한동안 멍해졌다.
영화는 점점 단순해지고 허점을 듬성듬성 내비치지만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하는 설명할 수 없는 마법을 부리고 있다.
그래서 영화를 설명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감정만 가득차 흥분으로 들뜨는 물음표만 머릿속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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