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영화에 대해 전반적으로 얘기하고자 한다.
각각 평론을 쓰려고 했으나 시간이 허락하질 않아 이런 방법을 택했다.
우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최근 한국영화의 성장에 관한 것이다.
예전 10년전만 해도 우리나라 영화는 정말 재미가 없었다. 특히 헐리우드 영화들과는 비교 자체가
어려웠었다. 모두들 입을 모아 이런 애기를 했었다. "우리나라 영화 돈주고 보는 사람도 있나?"
물론 이유는 여러가지였다. 영화 산업은 정책적으로 발전을 절대로 할 수가 없는 구조였다.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검열이었다. 뭘 좀 하려고 하면 가위를 가져다 대었다.
이것은 지금도 완전히 없어졌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때와 비교하면 정말 편하게 영화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영상 산업에 대해 전혀 투자가 없던 시절이었으므로 제작비 자체가 형편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 나라 영화를 이끌어 오늘의 눈부신 성장을 있게해준 여러 천재 감독들과 배우,
스텝들에겐 박수를 아무리 쳐도 모자르다.
지금의 성장은 물론 양적으로도 엄청난 팽창을 이루었지만 가장 결정적인 우리의 재산은 질적
향상이다. 이제 세계 어느 시장에 내다놔도 절대로 손색이 없다.
영화에 대한 규제가 사라지고 영화 한편의 흥행으로 엄청난 물질적, 정신적 힘을 얻은 여러 재벌
기업들의 집중 투자가 이어지면서 훨씬 여유로운 환경 속에서 젊은 영화인들의 천재성을 뒷바침
해주게 되었다. 물론 돈만 쳐바르고 본전도 못찾은 것도 모자라 욕도 많이 먹은 영화도 부지기수다.
현재 한국 영화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고, 그와 더불어 여러 젊은 영화인들의 천재성도
여기저기서 두각을 보이고 있어 한동안 계속 되리라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올해 내가 본 여러 한국 영화들 중 손꼽는 영화들을 소개해 보겠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내가 뽑은거다. 왜 뽑았냐고는 묻지 마시길 빈다.
살인의 추억...
내가 최근 10년간 보아왔던 한국 영화들 중 5등 안에 든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물론 난 전문적인 영화 평론가가 아니므로 내 잣대로, 마음대로 평가한 것이다.
봉준호과 송강호의 만남은 한국 영화 전반에 까지 그 영향을 미칠 정도였다.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과 관객과의 치열한 심리전만 해도 진땀나는데 송강호의 연극 무대에서
갈고 닦은 연기력이 이제서야 절정에 다달아 소름까지 돋게 만들었다.
거의 마지막 장면에서 밥은 먹고 다니냐는 결정적 대사 한방으로 모든걸 얘기해 준다.
우리 한국 영화가 질적으로 성장했다는 결정적인 단서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천재 감독들과 수년간 다져져온 소름을 돋게 하는 배우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이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엄청난 수준의 각본이다. 상상력과 소재가 다양하고 끝이 없다.
살인의 추억이란 영화에 나오는 모든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 누구 한사람 다른 배우가 연기했다면
이 영화는 분명 이처럼 성공하진 못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보고나서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물론 요즘 한국 영화들이 다 그렇다.
그 또한 한국 영화 성장의 한 증거다.
황산벌...
기대만큼 그리 흥행하진 못한것 같지만 난 쓰러지면서 영화를 본 기억이 있다.
그 이유는 학교 동기놈과 군대 쫄따구 놈 중에 보성 벌교 출신이 있기 때문이다.
정말 오랜만에 실컷 웃어봤다. 하지만 이 영화를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이 영화는 절대로
코미디 영화라고 단정 지을순 없다. 여러가지 극적 장치들을 봐도 알 수 있다.
동족 상잔의 비극을 주제로 했고 누가 누구를 적으로 생각하고 누가 통일의 위업을 달성했고
그 과정이 어쩌고, 그 결과가 어쩌고의 논란의 여지는 많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평가는
여러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쉬운 예로 한국인을 빛낸 100명의 위인이란
노래에서 정말 위인이 몇 명인지는 보는 사람마다 다 틀리다.
중요한건 사투리로 재밌게 포장은 되어 있지만 가만히 웃으며 볼수만은 없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수 천번의 전쟁으로 피곤해진 우리 국민들은 이제 좀 여유롭게 역사를
바라보아야 할 때가 되었고 그 시대적 요구에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외세의 힘을 빌어 통일을 이룬 신라의 모습은 어쩌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모습이다.
지금 우리의 역사 의식에 대해 진지하게 다시 한번 생각해볼 좋은 기회로 삼길 바란다.
6개의 시선...
우리 영화의 질적 향상의 증거들중 하나다. 이 영화는 옴니버스 영화로 6명의 감독이 '차별'이란
주제하에 각자 다른 얘기를 이끌어 나간다.
난 이 영화를 보면서 정말 한국 영화에 대해 다시 한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감독들의 현실을 바라보는 눈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도 철저하고 정확할 수가 없었다.
영화는 종합 예술이다. 그리고 예술은 그 시대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가 예술의 역사에 대해 얘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낭만주의, 르네상스, 고전주의 등등
머리 아픈 단어들을 보더라도 그 시대의 어떤 흐름을 읽을 수가 있다.
지금 우린 포스트 모던의 시대에서 징그럽게도 혼란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세계화로 인한 여러
문화들이 홍수처럼 밀려들어 오고 가감없이 무조건 받아 들이게 되어 정말 우리 것이 무엇인지도
이젠 헉갈릴 정도이다. 그 와중에 이 영화가 우리에게 보여준 면목은 바로 바로 곁에 두고
찾으려 하지도 않았고 찾을 수도 없었던 그 무엇들이었다.
한 개인의 인격과는 전혀 상관없이 눈에 보여지는 모호한 기준에 의한 부족함으로 파생된 차별을
겪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대변하고 있다. 이들을 그렇게 만든건 바로 우리들이다.
부정해도 소용없다. 그들을 오지로 내몰고 지겨워하고 따돌린건 우리들이다.
이런 말이 있다. 장님만 사는 나라에서는 애꾸눈을 가진 사람이 왕이라고...
우리도 더 나을것 하나도 없다. 한쪽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볼 뿐이다. 나머지 한쪽 눈은 자기가
뜨고 싶을 때만 뜨고 산다. 우리 모두 그렇다.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세상의 반이 존재하고 있다.
그들만의 세상... 날마다 대륙을 횡단하는 그 청년처럼...
장화, 홍련...
가장 적은 돈으로 가장 성공한 영화중 하나이다.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만으로 모든걸
해내었다. 개인적으로는 공포영화를 썩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올해 한국 영화를 얘기할 땐
절대로 빠져선 안되는 영화중 하나이다.
여기서도 여실히 드러나지만 요즘 한국 감독들은 관객과의 머리 싸움을 즐기고 있다.
이 영화도 역시 한 개인이 생각하고 만들어낸 세상을 보여줌으로써 극적 효과를 최대치로
올려놓는다. 그냥 무섭다고 눈 가리고 반만 뜨고 소리만 지르고 보면 이 영화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몇 일밤 잠은 포기하고 그냥 두 눈 똑바로 뜨고 보면 대충 이해가 간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을 난 앞으로도 계속 관찰하고 싶다. 대성할 사람이다.
일명 주류라 불리우는 감독들, 즉 영화 제작자들의 구미와 관객에 맞추어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과는
그 질적인 면에서 일단 차이가 크다. 분명 대성하리라고 확신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난 김기덕 감독을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그는 가장 욕을 많이 먹는 감독들 중 하나이다. 영화만 만들면 욕부터 먹는다.
만들고 있을때도 찾아가 욕하는 사람도 있다. 바로 여성영화를 만들줄 모르기 때문이다.
남성을 때리고 패고 죽이면서 성적인 억압에서 여자 주인공들을 단 한번도 해방시켜준 적이 없다.
요즘은 그걸 각오 했거나 아니면 아예 귀를 닫고 영화를 만드는듯 하다.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김기덕 영화의 주인공들을 남자와 여자의 배역을 서로 바꾸면 바로 여성
영화가 된다. 그렇다고 지금의 김기덕 영화를 남성 영화라 부르진 않는다.
아무튼 이 영화는 김기덕 감독이 왜 천재라는 소리와 욕을 동시에 배부르게 듣고 있는지 알 수가
있다. 인간의 생로병사와 인생역정을 자연의 섭리인 4계절과 비교하며 보여준다.
아예 욕먹을 것을 각오하고 주인공 역시 스님이다. 유혹하는 것 또한 여성이다.
이 영화를 차라리 비구니의 삶을 그렸다면 곧바로 상을 몇개 탔을지도 모르겠다.
아제아제 바라아제가 그랬듯이 말이다.
특히 겨울을 연기하는 배우가 감독 자신이라는건 영화를 보고나서도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을 것이다. 고행하는 모습을 진지하게 연기했다.
물위에 떠있는 절의 모습은 정말 압권이다. 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호수를 어떻게 찾아서
그 위에다 절을 띄워놓을 생각을 했는지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자연이란 것이 사람이 단 한사람만 있어도 훼손되어 버리는 것 또한 자연의 이치다.
이 호수위의 절 역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중 극소수의 무식한 인간들이 드나들며 자연을
망쳐놓게 되자 곧바로 철거했다고 한다. 그 모습을 이젠 영화 속에서 밖에 볼수가 없다는게
가장 아쉽다. 그리고 그 사람들 누구인지 얼굴 좀 보고싶다. 머리 속에 뭐가 들었는지.
아무튼 자연을 닮은 인간의 삶을 주제로 하였고 나 또한 몇일간 머리 끙끙 앓으며 고뇌해야 했다.
한낱 인간은 대 자연의 아주 작은 구성원일 뿐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자연을 닮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보았던 영화들 중 최고만을 꼽아 보았다. 이외에도 올해에는 참 많은 영화들이
있었다. 아깝게 저 위에 소개하지 못했지만 바람난 가족 역시 수작이었다.
영화 전반적으로 어쩌면 가벼워질 수 있는 주제를 문소리라는 배우 하나가 모든걸 다 커버했다.
우리 나라 영화의 가장 큰 재산은 설경구와 문소리라고 두 주먹 불끈 쥐며 확신할 수 있다.
배우란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모습을 앞으로도 지켜보자.
분명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예전에 영화 한편으로 충격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바로 러브레터라는 영화였다.
아주 잔잔하고 감동적인 일본 영화다. 이 영화로 충격받을 일이 뭐가 있겠냐고 묻겠지만
난 몇일동안 충격에 밥도 못먹었었다. '이야... 난 왜 지금까지 저런 생각을 못했지?'
이런 생각들이었다. 러브레터를 몇번씩 자세히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영화가 시작하고 끝나기
전까지 그 잔잔한 영화에서 카메라가 단 한번도 고정된 적이 없었다.
난 그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카메라라는 것이 배우들의 모습을 찍는데만 쓰이는게
아니란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배우들의 심리 상태에 따라 카메라가 움직여주니까 정말 그 감정들이
몇 배로 더 크게 전달 되었다. 잔잔한 영화지만 여백의 미를 활용해 배우들의 심리 상태를 관객들이
직접 느끼게끔 여러가지 장치를 통해 보여 주었고 그 중 하나가 바로 카메라였다.
이런 충격을 그때 나 혼자만 받은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요즘 한국 영화들 대부분이 그렇다.
아예 이젠 별로 심리적인 혼동이 없어도 그냥 움직인다. 유행처럼 말이다.
여러가지 집적된 기술과 천재적인 감독, 그리고 혼으로 연기하는 배우들이 바로 우리 영화를
이끌어 가고 있고 이 흐름 역시 계속 이어질 것으로 믿는다.
이러한 영화의 여러 재료들이 탄탄하게 자리 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들로 인해 이젠 자신있게 우린 얘기할 수 있다.
요즘 한국영화... 참 볼만 하다...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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